2007년 05월 04일
모녀 여행
영어로 Mother-daughter trip이라고 하면 좀 더 그럴싸해 보이려나. 과년한 싱글 딸네미를 둔 덕택에 주변사람들에게 얼굴 많이 구기고 변명아닌 변명하느라 진땀 꽤나 흘리면서 살아가는 울엄마, 그 덕에 은근히 나랑 같이 여행다닐 일이 많다. 더욱이 일본 전국이 완전히 휴가모드로 접어드는 골든위크 기간에 일본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휴가를 낼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 울 모친께서는 또 한번의 여행 파트너로 낙점되셨다는…
사실 홀홀 단신 열대의 휴양지로 떠나서 밀짚 모자와 선글래스를 깊숙이 눌러쓰고, 수영장이나 해변 파라솔 그늘 밑에서 딩굴딩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책이나 실컷 읽는 혼자만의 휴가를 꿈꾼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으나, 실행의 문턱에서 항상 빗겨가고 마는데, 이번도 마찬가지 경우. 혼자만의 휴양지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엄마와의 동행을 결정했다.
암튼, 거의 8,9년만에 찾아간 방콕은 시끄럽고 매콤한 매연 가득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그간의 소원함을 탓하는 듯 여기저기 발걸음을 못뗄 정도로 맛나는 음식점들, 향긋한 아로마 내음 가득한 지상낙원과 같은 스파, 꽤 근사한 위용을 자랑하며 새로 들어선 쇼핑몰, 짐톰슨 매장의 멋진 실크 등이 자석과 같은 흡입력으로 나를 붙들어 맸다. 방콕에서 1년 정도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마져 들게 할 정도였으니.
방콕에만 8일내내 있어도 좋았겠지만, 굳이 푸켓을 일정에 구겨 넣은건, 그간 일에 찌들은 스스로에게 휴양지에서의 시간을 필히 선물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삐 돌아다니필요도 없는 느긋한 시간들을 가지기에는 아무래도 열대섬의 리조트가 딱일거라는 선입견을 벗어나기 힘들기도 했고.
학교 졸업하고 다시 일 시작한 뒤로, 일주일 이상의 휴가가 생길 때마다 항상 뉴욕에 올인하다보니, 휴가 같은 기분으로 다녀온 여행은 참 오랜만이다.
근데, 여행은 중독성이 있는 걸까. 겨우 사흘밖에 못 보낸 방콕에 대한 아쉬움으로 벌써부터 달력을 뒤적뒤적, 각종 여행예약 사이트를 들락이며 여름에 잠시 한번 다녀올까 하는 생각으로 바쁘니... 벌써부터 그립다. 방콕.
<에프터 눈 티>
맛나는 거라면 눈이 섬광으로 번뜩이는 내 본능이 어디서 왔겠는가. ㄸ끈한 스콘, 맛나는 케익과 샌드위치로 가득한 트레이 앞에서 아이와 같은 행복감으로 가득찬 울엄마. 핏줄은 무서운 거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 해주는 오리엔탈 호텔에서의 느긋한 차 마시기 시간. 울 엄마랑 동행하면서 한가지 좋은 점은, 둘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정신 없이 행복해지고, 실란트로, 팍치 같은 향료를 너무 사랑하고, 한국 음식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 식당 들락날락 할일 없다는거다.
에프터 눈 티도 티지만, 모든게 여유롭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오리엔탈 호텔. 나이 들어서 시간과 재정적인 여건이 모두 허락한다면 매년 겨울을 이곳에서 지내는 것도 참 좋지 않을까 하는 한가로운 망상도 잠시... 

<팡아만>
이왕 관광객이 되기로 한거 본격적으로 나서서 팡아만 카누 투어까지 해버렸다.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 갑판이 흥건이 젖기도 했지만, 조그만 섬에 내릴 때마다 신기하게 비가 그치는 조그만 행운에 기뻐하기도. 전담 카누 드라이버 및 포토그래퍼가 되다시피한 현지 투어 캡틴은, 영리하게도 최고의 서비스를 펼쳐서 울 엄마한테 귀염을 듬뿍 받고 내 지갑에서 두둑한 팁을 챙겨가는 수단을 발휘하기도. 

<푸켓 JW 메리엇>
어느 건축가가 생각한건지 몰라도 호텔 로비가 곧장 바다로 이어지는 듯한 설계는 참 신선하다. 일단 체크인하는 순간 호텔에 대한 만족도와 호감도가 급상승하는 거니까. 로맨틱한 여행으로 아만푸리 같은 커플용 풀빌라에 묵는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푸켓에 갈 때마다 이 곳을 선택하게 될 듯하다. 
# by jeepy | 2007/05/04 17:27 | 트랙백 | 덧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