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06일
떠돌이의 몽상
어릴 적 나는 땅이 꺼질까 봐 조심조심 한 발자국씩 내딛느라, 20분이면 갈거리를 몇시간이나 걸려 걷곤 하던 아이였다. 진심으로 땅이 꺼질까 봐 걱정스러워 그랬는지, 아님 너무나 혼자만의 생각에 골몰해서 나만의 슬로우 모션 걷기 세계에 갇혀 있었던건지, 예나 지금이나 운동 신경 없이 둔하게 뒤뚱거리느라 그랬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7,8년간 매일같이 거르지 않았던, 내가 제일 좋아하던 놀이는 머리색이 각각 달른 세 명의 마론인형에다가 이런 저런 천쪼가리며, 용돈의 대부분을 쏟아 부어 수집한 인형 옷을 갈아 입히면서 그날 그날 되도 않는 얘기를 지어내면서 혼자만의 인형극 하기였으니, 지독히도 내성적이고 집 안에서 어정거리기를 좋아했던 셈이다.
그랬는데, 나이가 들고 어느 순간에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나의 모습은 여기 저기를 떠돌고 있는 국제 방랑자에 다름 아니다. 대학 졸업하고 일 시작한 이래, 벌써 네 번째의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지난 5년간 다섯 번 이상의 이사를 했고, 이제 또 어디로 짐을 꾸려야 할지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참이다. 게다가, 일상의 30%는 어딘가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느라 거처를 떠나 있고… 아직은 그래도 집보다 호텔이 편하게 느껴지는 정도의 위험 수위는 아니니 다행이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꽤 지긋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소위 말하는 집도 절도 없이, 가정을 꾸릴 가능성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다, 변변히 모아놓은 재산이라 할만한 것도 없는 현실인거다.
재미로 몇 번 본 사주 풀이에서도 딱히 역마살이 넘 심하다 이런 말은 없었던 듯 한데, 어쩌다 이렇게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의 추종자 비슷하게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누구처럼 여행기를 쓸 욕심도 없고, 또 그렇게까지 돌아다닐 만한 이상도 없지만, 언제 나의 떠돌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될런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목표는 그래도 한 5년 안에는 잠시 거처가는 공간이 아니라 십년은 살만한 , 창으로 넉넉한 볕이 들고, 부엌이 쓸만한 나만의 집에 정착을 해서, 좋아하는 그릇과 부엌 용품을 이러저리 널어 놓고 요리를 하면서 주말을 시작하고, 씨디와 만화책이 빼곡한 서재에서 한 갓진 오후를 보내는 건데... 과연 이루어 질까나.
# by jeepy | 2007/06/06 18:12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