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10일
Borat, Hikimado, 300
근 한달 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온전한 이틀간의 주말, 금요일을 포함하여 일본에 온 이래 가장 여유롭고, 그나마 인간답게 보낸 시간인 듯 하다.
같이 타국에 나와서 일하는 처지로 직장생활의 뒷담화를 나누는 Buddy가 되어 버린 직장동료 Jos가 마련한 Movie Night. 그의 친구들 구성층이 약간 Random하기는 했지만, 우연히 필리에서 살다온 그의 친구 중 하나와 레스토랑 기억 해내기 소동도 벌이고 (필리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아직도 맴도는데), 말로만 듣던 화제의 영화 Borat도 보고, 그럭적럭 괜찮은 금요일 밤으로 주말을 시작했다. 엽기적이고 느끼한 구석이 만만치 않지만, Boart은 상당히 추천할 만한 코메디.
토요일은 언제나 친절한 히데코와 한조몬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가부키 보기. 그녀는 몇 안되는 Medical Device업게에 종사하는 학교 사람들끼리 한달에 한번씩 하는 주말 점심의 멤버이자, 2003 테츠의 아내이다. 모임 주선하는데 천부적인 재질이 엿보이는 이 부부를 보면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결혼도 참 할만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그마한 이태리 식당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도착한 극장. 친절하게도 처음 한 시간은 젊은 배우가 나와 “가부키 이해하기” 강좌를 한다. 무대 위에서 설명과 실연을 곁들여 가면서 무대 장치, 몇가지 기본 원리, 연기의 구성 등등을 좌악 펼쳐주는데 그야말로 초심자들을 위한 유익한 시간이고, 좌석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전통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혀갈 수 있는 좋은 아이디 듯.
어쨌든 가부키 이해하기 시간동안 반복해서 관객들에게 주입한 메시지는 “가부키는 남자가 공연을 하느냐, 줄거리나 무대가 어떻느냐 춤이 어떻느냐 이런걸 다 떠나서 오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는 거였다. 쉽게 말하면 이런 저런 토 달지 말고, 아름다움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는 일종의 반복 학습이었던 셈인데, 은근 자잘한 반항심이 많은 나에게 이건 수많은 질문을 한번에 좌악 덮어버리는 고도의 상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건 당연한 이치.
어쨌거나, 이어서 펼쳐진 한시간의 히키마도 (Skylight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영문 제목도 달고)공연. 줄거리는 무척이나 신파스러운 이복형제간의 우애였는데, 무척 과장된 분장을 하고 나타난 스모선수 역의 주연배우가 주는 압도감은 인정할 만했다. 일어가 안되므로, 영어 해설 이어폰을 꼽고, 의상과 배우들의 몸짓 연기 등등을 짐짓 감상하며 나름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막판에 식구끼리 자수를 하자 말자 (스모선수는 실수로 도적을 죽인죄로 쫓기는 지명수배자의 신세였으므로) 이러는데 주변의 지긋하신 분들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훔치시는게 아닌가? 헛헛. 순간 집중력 좌악 깨지면서, 이들의 정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공연은 끝나고...
주말의 마지막인 일요일은 논란이 되었던 "300"보기. 백인 우월주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너무 발랐다, 스토리가 없다는 등의 악평은 진작에 들었지만, 일본에는 이번 주에야 개봉한 덕에 직접 판단할 기회가 없었다. 뭐, 악평에 있는 말들도 다 맞고, 특별히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아니지만, 머리를 비우고 기대없이 보기에는 또 괜찮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지나친 근육맨들은 별로지만, 어쨌든 얼굴도 제법 곱상한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자랑스럽게 키워낸 근육을 최대한 과시하는 의상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혹하는데다, 반지의 제왕 이후로 흔해진, 어둡지만 고상한 질감의 그래픽 화면이 상당한 신비감을 연출하고, 영화보고 나오면 테르모필레 전투 및 페르시아 전쟁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되면서 나름 역사공부에도 기여하는 셈이니 표값은 전혀 아깝지 않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원래는 그 유명한 히로노부 츠치구치의 초컬릿 가게 중 하나인 Le Chocolat De H 에 들러서 따뜻한 핫초컬릿을 한잔 마실까 싶었는데, 역시나 몇개 안되는 테이블에 자리가 없는지라, 초컬릿 케이크와 초코 수플레 하나씩을 사서 달랑 달랑 들고 집에서 진한 녹차와 곁들여 먹는 걸로 대신했다.
아마도 앞으로 1년여는 더 있게 될 동경에서의 생활. 지난 1년은 정신없이 쌓여있는 일들 치워내느라, 여기저기 떠도느라 어떻게 지냈는지도 기억에 없는데, 남은 기간 동안에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좀 추스리고, 생활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좀 만들어가면서 보내야 겠다는 각오로 새삼스러웠던 주말이 이렇게 간다.
# by jeepy | 2007/06/10 21:01 | 트랙백 | 덧글(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