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24일
Steely Dan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잔상
Judy는 눈을 감고 듣는게 좋을거라고 했다. 같은 사무실서 일하는 그녀는 벽안의 일어 동시 통역사면서 여가 시간에는 밴드를 결성해서 에어로 스미스풍의 음악을 하는 보기와는 다른 터프한 피가 흐르는 동료다. 스틸리 댄이 다시 뭉쳤단다, 일본에도 온단다 하는 소식에 같이 들썩 거린지 몇 달, 그러나 우리의 걱정은 팍삭 늙어버린 그 분들을 보고 그간 고이 간직해온 소중한 단상들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곡 중 하나인 Maxine의 주인공인 도널드페이건의 늙어버린 모습을 보는건 사실 상당한 두려움. 게다가 안봐도 엄청난 돈을 들였을게 분명한 미드타운 내의 빌보드라는 거창한 재즈클럽의 그랜드 오프닝 공연으로 잡힌 만큼, 표 구하기도 힘들었고, 가격도 쓸데없이 비싸기 이를데 없으니.
이러저러한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 공연을 놓칠 수 없었던 건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결정.
전에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를 보고 한 대 맞은 듯한 멍한 감동에 젖어 친구들한테 무조건 보라고 거의 닥달아닌 닥달을 하다시피 했었는데, 그 중 한친구가 영화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고 권한 내게 은근한 힐난의 눈길을 보냈었다. 무슨 영화가, 자기의 지난 연애사를 낱낱이 속속들이 들춰내는 것 같아서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며.
스틸리 댄의 공연도 내게 그런 역할을 한 걸까. 길지 않은 한시간 남짓의 공연시간 동안, 바늘로 찌를 여지도 없어 보이는 물샐틈 없는 완벽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그 현란한 연주 속에서 계속 나를 파고 든건 지독한 과거의 잔상들. 매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내는 내게 인생에서 가장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가 있었다면 단연코 20대 후반의 나날들이다. 행복했다 끔찍했다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그냥 참 다른 경험들이 짧은 기간을 사이에 두고 융단 폭격과도 같이 내렸던 그시기는 성장통과도 같은 거였다고나 할까.
근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스틸리 댄의 무대에는 이제는 먼 얘기가 된 듯한 그 시절의 기억들을 들춰내는 교묘한 장치들이 실타래처럼 여기저기 얽혀 있는 거였다. 아 그랬었지 이랬었지 등등...
상당한 거금을 주고 공연 보러온 사람들의 기대 속에, 세월의 흔적을 버텨내지 못한 쇠잔한 목소리로, 그닥 엄청난 성의를 찾기 힘든 단 한시간의 공연으로 때운 (뭐 그래도 세션들, 특히 드럼, 베이스는 굉장했다), 이제는 흔들리는 배의 중량감만으로 중년을 넘어 노년의 분위기를 단박에 전달하는 이 뮤지션들에 대한 실망감은 분명히 감추기 힘들었다. 근데 예견된 실망감은 견딜만 했던데 비해, 의외의 복병은 기억의 끈을 놓치않고 계속 살아나는 과거지사의 중량감. 이거 난감하다.
더 웃긴건 집에 오자마자 당장 도널드 페이건의 앨범을 들으면서 쓴 웃음을 짓는 내 자신.
# by jeepy | 2007/08/24 23:50 | 음악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