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4일
Dutch Paintings
그림이라면 타고 나길 문외한인데다가, 전시회를 보고 뭔가 아는 척, 쿨한 척 해야겠다는 치기 어린 허영심으로 가득한 시절 따위 지난지 오래라, 세련된 미술 감상자로서의 자격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단순한 동기로 미술관에 간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일요일마다 아트 뮤지엄 입장료가 공짜라서 산책 길에 가끔 들렀었고, 록본기 힐스 전망대에 오를 일이 있을 때면 입장료에 모든게 포함되어 있으니까 모리 미술관에 가고, 뉴욕에 가면 메트나 모마는 여전히 잘있는가 싶어서, 또는 뮤지엄 샵에 쇼핑하러 갔다가 들르는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 코앞에 있던 성곡 미술관이나 금호 미술관은 한번도 안 갔다. 본능적으로 어딘가 구린 모 여인이 있는걸 알아 채기라도 했던 걸까?)
그냥 봐서 좋은 것, 이를 테면 말로 설명이 안되더라도 뭔가 느낌을 던져주고, 이러 저러한 상상의 나래를 펼 기회를 제공해주는 작품은 내게 모두 수작이다. 상상의 모티브. 이 단순한 잣대를 가진데다 보는 안목이 없으니 대개는 구경하면서 그냥 그림 앞을 휙휙 지나가기가 일쑤인데, 요새는 왠일인지 가는 곳마다 발목을 붙들어 매는 느낌 좋은 전시회를 턱턱 만난다. (뭐 가끔 지루하고 고루한 일상속에 이런 운이라도 맛보라는 하늘의 뜻인건가)
이름만 겨우 들어봤던, 르 꼴뷔제의 알차기 그지 없었던 건축전이 그랬고, (인체의 곡선을 따라 만들었다는 그 기 백만원짜리 긴 의자 아직도 눈에 삼삼) , 메트에 슬렁 슬렁 갔다 순간 넋을 잃고 헤엄치다 온 Dutch Paintings전에서의 램브란트 그림들이 그랬고, 요새 동네 미술관에서 하는 베르메르전이 그렇다.
일상에서 내가 아는 Dutch들은 모두 훌쩍 큰 거구에다 독일어 만큼은 아니지만 꽤 딱딱해 보이는 액센트를 구사하며 약간은 건조한 피부를 가진 상당히 사무적인 모습인데, 네덜런드 화가들 그림 속에서의 주인공들은 그래도 제법 윤기 있게 생겼다. 램브란트의 인물화 주인공들은 다들 유리처럼 반들대는 콧등을 자랑하고 베르메르의 주인공들은 사려깊은 눈매를 가졌으니.
다들 삶이 편해 보이는 얼굴들은 아닌데, 그래도 뭔지 모를 깊이가 여유가 있다. 삶에 찌들기는 나도 마찬가지 인데, 어느 날 누가 나를 삽화로 그린다면 내게서는 그런 깊이감이 당연히 안 느껴지겠지. 아, 시간을 거슬러 17세기로 갈수도 없고, 21세기 초를 이렇 듯 하릴없이 겨우겨우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이런 경박스러운 가벼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걸까.
# by jeepy | 2007/10/14 20:43 | 트랙백 | 덧글(1)




